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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물의 글은 누가 쓰는가? 카피를 정리하는 원칙본문
안녕하세요. 희명디자인입니다. 카탈로그 제작 일정이 밀리는 사유를 모아 보면 디자인 시안보다 원고 쪽이 먼저 걸리는 일이 잦습니다. 판형과 페이지 수는 첫 상담에서 정해지고 시안도 예정한 날짜에 넘어가는데, 정작 그 페이지를 채울 문장이 준비되지 않아 진행이 멈춥니다. 인쇄물의 글을 누가 쓰고 누가 확정하는지가 발주 초반에 합의되지 않으면 제작은 그 지점에서 정체됩니다.
디자인 업체는 회사의 사업을 대신 지어내는 곳이 아닙니다. 무엇을 팔고 어떤 실적을 쌓았으며 어떤 고객을 상대하는지는 회사 안에만 있는 정보입니다. 희명디자인 편집디자인팀이 상담에서 가장 먼저 정리하는 것도 여기입니다. 회사의 사실 정보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발주처가 주시고, 제작사는 계약 범위에 따라 원고 구조와 지면용 문장을 정리합니다. 이 경계를 초반에 그어두면 이후 일정 관리가 단순해집니다.
원고의 세 갈래
회사명 표기와 설립 연도, 제품 규격, 인증 번호, 주소와 대표 전화는 확인 책임이 따라붙는 사실 정보입니다. 그 확인 책임의 끝은 발주처에 있습니다. 인쇄가 끝난 뒤에 이런 항목에서 오류가 나오면 재인쇄 위험이 바로 커집니다.
제품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고 어떤 문제를 다루는지 풀어쓰는 설명 문장은 성격이 갈립니다. 회사가 초안을 주면 제작사가 지면에 맞게 다듬는 구간이죠. 왜 이 회사와 일해야 하는지 말하는 주장 문장은 사실 자료를 놓고 양쪽이 조율해 잡습니다. 이 세 갈래를 나누지 않고 원고를 달라고만 요청하면, 받는 쪽은 어디까지 써야 할지 판단하지 못합니다. (원고 지연은 분량보다 작성 범위가 흐릴 때 자주 생깁니다.)
원고를 넘기는 형식도 미리 맞춰 두면 좋습니다. 표 안에 갇힌 문장, 발표 장표에 흩어진 문구, 손으로 적어 사진으로 찍은 메모가 뒤섞여 들어오면 옮겨 적는 시간이 따로 붙습니다. 텍스트 파일 하나에 순서대로 모아 주시면 그 시간이 그대로 줄어듭니다.
확정자와 검토자의 구분
검토자가 여러 명인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영업팀은 제품 사양을 더 넣자고 하고, 기획팀은 문장을 줄이자고 하고, 위쪽에서는 사업 방향을 앞에 두자고 합니다. 셋 다 나름의 근거가 있어서 실무자가 혼자 조율하기 어렵습니다. 의견을 취합해 제작사에 전달할 창구를 한 곳으로 정해두는 것이 관건입니다.
실무자가 가장 당황하는 순간은 인쇄 직전에 상위 검토에서 문장을 통째로 바꾸자는 말이 내려올 때입니다. 그 시점의 수정은 문장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문장 길이가 크게 바뀌면 행수와 페이지 흐름이 달라져 사진과 표의 배치까지 다시 잡아야 합니다. 확정 권한을 가진 사람을 첫 회의에서 지정하고 상위 검토를 시안 단계보다 앞으로 당겨두면, 뒤늦은 방향 전환과 반복 교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 한 줄 합의가 나중에 일정을 지켜 줍니다.)
지면 설계에 맞춘 원고 분량
원고를 문서 편집기에 쓰면 분량 감각이 사라집니다. 화면에서 한 장 반쯤 되어 보이던 글이 리플렛 한 면에서는 넘칩니다. 순서를 뒤집는 쪽이 낫습니다. 판형과 여백, 단 구성, 본문 서체 크기와 행간, 이미지 비중이 정해지면 면별 권장 원고 분량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실제 수용량은 제목과 소제목의 비율, 표와 사진이 차지하는 면적, 글꼴 폭과 자간까지 함께 움직입니다. 숫자를 못 박기보다 한 면을 시범 조판해 보고 권장 분량을 확정하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그 기준을 원고 작성자에게 미리 전달하면, 다 쓴 뒤에 통째로 덜어내는 작업을 건너뜁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 면을 조판해 보여 드리는 쪽이 빠릅니다.)
제목과 본문의 위계도 원고 단계에서 표시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어느 문장이 표제이고 어느 문장이 설명인지 구분되지 않은 원고는 디자이너가 임의로 해석하게 되고, 그 해석이 어긋나면 시안 검토가 한 회차 늘어납니다.
교정 회차마다 범위를 좁힙니다
교정은 회차를 거치며 수정 범위를 좁혀 가는 작업입니다. 초교에서는 사실 정보와 전체 구성을, 재교에서는 문장과 정보 위계를, 최종 교정에서는 오탈자와 조판 상태를 중심으로 봅니다. 회차별 초점이 이렇게 갈릴 뿐, 어느 회차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항목이 남습니다. 고유명사와 수치, 연락처는 매 회차 다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범위를 정해두지 않으면 최종 교정에서 문장을 새로 쓰자는 의견이 올라오고, 그때부터 일정이 무너집니다. 인쇄 직전 오타가 무서운 것은 글자 하나 자체가 아니라 그 글자에 딸려 오는 재출력과 교정쇄, 그리고 납기 지연입니다. 교정 회차와 각 회차의 범위를 발주서에 적어 두는 회사는 이 구간에서 시간을 벌어 갑니다.
국문과 영문을 함께 싣는 인쇄물이라면 순서가 하나 더 붙습니다. 국문이 확정되기 전에 번역을 넘기면 국문이 손질될 때마다 번역이 따라 움직입니다. 국문을 먼저 확정하는 쪽이 번역 재작업을 줄여 주고, 일정상 병행이 불가피하다면 제품명과 핵심 용어부터 고정해 두고 시작합니다.
문장 자산으로 남기기
확정된 원고는 인쇄물 한 종에서 소진되지 않습니다. 홈페이지 회사 소개, 제안서 앞머리 요약, 채용 공고의 회사 설명까지 같은 문장이 쓰입니다. 인쇄용 파일과 별개로 최종 확정 원고를 텍스트로 따로 보관해 두면, 다음 발주에서 처음부터 다시 쓸 일이 없습니다.
회사명 영문 표기, 주소, 대표 전화, 사업 분야 소개 한 문단처럼 반복되는 사실 정보는 한곳에서 관리하는 단일 기준 데이터로 두고 인쇄물마다 그 값을 불러다 쓰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주소 하나가 바뀌었을 때 고쳐야 할 파일이 몇 개인지 세어 보면, 이 관리가 왜 필요한지 바로 드러납니다.
인쇄물의 글은 디자인에 딸린 부속이 아닙니다. 확정 문장과 반복 정보를 따로 관리해 두면 다음 개정판에서 원고를 다시 수집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줄고, 그 기록이 회사의 문장 자산으로 남습니다.
희명디자인 편집디자인팀
* 참고할만한 인사이트 칼럼링크 : 인쇄물은 어디에 쌓아둘 것인가, 납품과 보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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